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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인사이트 ①] 원전 해체,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2024.03.12 4min 21sec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기술에 따라 건설업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설시장을 리드해온 현대건설 또한 핵심 미래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방식을 벗어난 건설의 혁신은 넥스트 노멀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핵심 키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현대건설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 시선을 통해 이를 진단해 보는 칼럼을 기획 연재합니다.


글=서범경(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개발부 부장), 일러스트=이유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위키미디어



■ 지구에 존재하는 원자력 발전소는 몇 개나 될까?


고리원자력발전소

[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자력발전소의 풍경. 현대건설이 시공한 이 원전 중 고리 1호기는 지난 2017년 국내 원전 최초로 영구정지되었습니다 ]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원자력을 주목하는 시선이 늘고 있습니다. 경제적이면서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방식과 보완된 안전성 때문에 우호적인 시선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원전 재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총 414기이며, 건설 중인 원전은 57기라고 합니다(2024.3.7. 기준). 하지만 늘어나는 원자력발전소와 함께 논의되는 것이 원전의 수명 문제입니다.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가동한 영국은 이미 36개나 되는 원전의 가동이 멈춘 상태입니다. 현재 해체를 위하여 영구정지한 원전은 전 세계 209기나 되며, 이 가운데 21기만이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글로벌 원자력발전소 현황 북아메리카 가동원전 112기 108.459MW(e) 건설 중 원전 1기 1,117MW(e) 라틴아메리카 가동원전 7기 5,077MW(e) 건설중원전 2기 1,365MW(e) 서유럽 가동원전 93기 93,080MW(e) 건설중원전 3기 4,890MW(e) 동유럽 가동원전 75기 55,622MW(e) 건설중원전 10기 9,666MW(e) 중동 및 남아시아 가동원전 30기 15,108MW(e) 건설중원전 11기 9,842MW(e) 아프리카 가동원전 2기 1,854MW(e) 건설중원전 3기 3,300MW(e) 극동아시아  가동원전 95기 91,930MW(e) 건설중원전 27기 29,057MW(e) 오세아니아 가동원전 0기 0MW(e) 건설중원전 0기 0MW(e)

[ 2024년 원자력발전소 현황. 현재 지구상에는 414기의 원전이 총 37만2,14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



■ 짓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진 해체 기술


그렇다면 정지된 원자력발전소의 10%만 완전히 해체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전 해체란 운전 과정에서 생성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고,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성 폐기물까지 안전하게 처리해 발전소 건설 이전의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되돌리는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흔히들 해체는 건설의 역순(逆順)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시설들은 법적기준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수행하기 때문에 일반시설과 같은 방법으로 해체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원자력발전소는 해체 과정에서 다량의 방사성 폐기물이 일시에 발생하고, 관계 법령과 시설, 장비의 제한 등으로 인해 대규모 처리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때문에 원전 해체는 훨씬 더 복잡하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원전해체 주요절차 영구정지 운영변경 허가/영구 정지 2년 내외 안전관리 인출/안전관리/반출계획/준비 5년 내외 제염/철거 방사능 오염제거 철거 및 폐기물 처리 6년 내외 복원 완료 부지복원 해체 완료 2년 내외 15년 내외 소요


실제로 50년대부터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온 해외 선진국들은 검증시설들을 활용한 대규모 실증사업을 수행하며 기술력 고도화에 주력했습니다. 이로 인해 해체관련 기술도 함께 습득할 수 있었죠. 따라서 원전 해체는 기술 장벽이 훨씬 높은 편이며 국가 주도의 강력한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구축하여 수행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68%(282기)가 30년 이상 운영된 원전이며, 40년 이상된 노후 원전도 40%(165기)를 육박하는 데이터는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현시점에서 원전 해체 시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수십 년 안에 많은 수의 원전을 동시에 해체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소와 별개로 핵연료 주기(Nuclear Fuel Cycle) 시설과 연구용 원자로까지 감안한다면 이제 해체기술은 원전 건설 못지않게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글로벌 해체시장이 열린다


국가별 영구 정지된 원전수(총209개) 미국 41 영국 36 독일 33 일본 27 프랑스 14 러시아 10 스웨덴 7 기타 41 출처: 한국원자력기구(IAEA) 2024.3.7.기준


현재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약 5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단계별로 세분해 본다면 ▶해체 준비(28%) ▶제염/절단/철거(36%) ▶폐기물 처리(26%) ▶환경 복원(10%)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전 해체 시장은 노후 원전을 대거 보유한 미국‧영국‧독일 등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2030년 이후부터는 글로벌 경쟁 체제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특히 많은 전문기업들이 해체 경험을 보유한 국가 중심의 사업에 참여하여 실적을 쌓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건설사 역시 이 대열에 동참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자력발전소

[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社(HoItec International)와 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최초로 홀텍 소유의 미국 인디안포인트 원전(Indian Point Energy Center) 해체사업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많은 해체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현재 총 93기의 원전이 가동 중인 미국은 41기의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되었으며, 이 가운데 16기의 해체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국의 원전 해체는 원전 사업자와 전문기업이 계약에 따라 해체방식의 자율성이 보장되나 보통 영구정지 후 60년 이내 해체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나 다수의 해체 경험과 기술 우위를 지닌 자국 기업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해외 기업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기술개발을 포함한 사업관리 등 대부분이 민간산업 분야로 이전되어 시장이 개방된 상태이며, 해체 비용 확보와 안전성 분야만이 미국 정부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공조 속에 관리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건설은 2022년 미국 원자력 전문기업인 홀텍社와 인디안포인트 원전 해체사업의 PM(Project Management) 계약을 포함한 원전해체 협력계약(Teaming Agreement)을 체결하고 미국 원전 해체사업에 뛰어들어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행보가 크게 기대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브로크도르프 원자력발전소

[ 2021년 정지가 결정된 독일의 브로크도르프 원자력발전소의 전경. 독일은 33기의 원전을 모두 영구정지 시키는 과감한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해체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입니다. 노후 여부와 상관없이 가동 중인 33기 원전 모두를 영구정지 시키는 과감한 결단을 했으며, 이 가운데 3기의 해체를 완료했습니다. 다양한 해체방식 중에서도 주민 수용성‧인력 활용‧부지 재이용 등의 측면에서 인허가가 나면 바로 해체하는 ‘즉시해체(Immediate Dismantling)’ 방식을 선호합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단위기술 중심으로 해체기술을 개발한 후 연구로 등 실증시험을 통해 기술을 확보했으며, 최근에는 EU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해체 경험을 활발하게 교환하고 있습니다.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원전을 가동한 영국은 1959년부터 세계 최초의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을 운영하는 등 원자력 분야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입니다. 긴 역사만큼 총 36기의 원전이 영구정지 됐으나 아직 해체가 완료된 원전이 없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는 노형의 특성상* 인허가 취득 후에도 시간에 따른 방사능 반감 효과 등 상당기간 안전관리를 수행한 후 해체를 진행하는 ‘지연해체(Deferred Dismantling)’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해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밀폐관리의 기간을 단축하는 추세이며, 해체에 관련된 모든 절차를 국가기관인 ‘원자력해체청(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 NDA)’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영국은 자국의 세라필드(Sellafield) 원전 해체와 더불어 리투아니아의 이그날리나(Ignalina) 원전 해체사업도 수행 중입니다.

*영국은 흑연 감속재가 있는 마그녹스(Magnox) 및 가스로(Gas-cooled Reactor) 노형이 많습니다. 방사성 흑연의 처리과정의 난이도 때문에 ‘지연해체’ 방식을 주로 적용합니다.



■ 첫 걸음을 뗀 대한민국 원전 해체


월성 1호기

[ 최근 해체계획서 초안에 대한 주민 공람 절차를 밟고 있는 월성 1호기 전경. 월성 1호기 역시 1975년 현대건설이 시공해 1983년에 준공했습니다 ]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국내 최초의 원자력연구시설(연구로 1‧2호기, 우라늄변환시설) 해체를 통해 소규모 해체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원전 해체 시장은 형성되지 않았지만, 영구정지한 고리 1호기(경수로형)와 월성 1호기(중수로형)를 시작으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현대건설이 압도적인 원전 시공경험과 해체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 원전 해체시장에서까지 경험을 쌓고 있어 국내는 물론 폐쇄적인 글로벌 시장의 진입 가능성까지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 선진사들의 방어도 만만치 않습니다. 해체사업을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해체기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으며, 안전성과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첨단기술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기술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로보틱스를 활용한 해체연구를 확대 추진하고 있으며 직접 적용 중이기도 합니다. 국가 차원의 과감한 지원도 강점입니다. 미국의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는 오염 및 폐기물 처리, 토양 및 지하수 복원 등과 같은 정화 작업에 약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유럽 역시 고방사능 구역의 해체와 폐기물 처리를 위한 원격기술 등 기술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EU를 통해 해체 안전성과 비용 절감 및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지원 중입니다. 


이처럼 원전 해체가 글로벌 원자력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 역시 기존 상용기술을 뛰어넘는 첨단 해체기술 개발에 뛰어들어야 할 시점입니다. 아직은 후발주자로서 기술과 경험에서 부족하지만, 우리의 강점인 첨단 융복합기술(ICT, AI 등)과의 접목을 통해 해체작업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해체시간 및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조만간 글로벌 해체시장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국내의 경우 상대적으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부지 확보가 용이한 선진 국가들보다 제염기술 개발 및 투자에 힘을 쏟는 것도 강점으로 작용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원전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해외 선도기업과의 공조를 통해 국제 공급망에 편입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며, 국내 원자력 생태계 유지와 해체 전문기업 육성을 통해 지속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