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후에 강한 기술] “강풍에도 끄떡없는 건설물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2023.09.19 5min 14sec

바람을 극복하는 현대건설 내풍설계 기술


‘할퀴고 지나간다’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는 태풍 뉴스의 단골 수식어입니다. 태풍의 강한 바람이 건물의 유리창과 외장재를 부쉈다는 이야기는 예사, 달리던 자동차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거나 콘크리트 구조물을 망가뜨렸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태풍은 북서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중심 최대 풍속 17m/s 이상인 열대저기압을 말합니다. 태풍은 7~10월 사이 많이 발생하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연평균 3.1개꼴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10m/s의 바람은 우산살을 꺾고, 15m/s면 사람이 걷기 어렵습니다. 50m/s부터는 콘크리트로 만든 집을 붕괴시킬 정도로 강한 위력을 지니죠. 한반도에서 가장 강하게 분 바람(태풍 매미)은 순간 최대 풍속 60m/s로 송전탑을 휘게 할 정도의 위력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바람에 대응하는 기술은 없을까요. 강풍에도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물과 교량을 건설하기 위한 기술이 바로 ‘내풍설계’입니다.

*태풍은 발생 해역에 따라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태풍(Typhoon)’, 북태평양 동부·북대서양·카리브해에서 일어나면 ‘허리케인(Hurricane)’, 벵골만·인도양 등에서 발발하면 ‘사이클론(Cyclone)’이라 합니다.


글=박현희 / 디자인=원혜연 / 도움말=길용식 책임연구원(건축주택연구팀), 정길제 책임연구원(토목연구팀)



국내 최초 ‘내풍설계’를 위한 풍동실험실


1940년 11월 발생한 미국 ‘타코마 다리(Tacoma Narrows Bridge) 붕괴 사고’는 내풍설계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현수교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로 홍보하던 다리가 개통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무너져 버렸으니까요. 타코마 다리는 53m/s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으나, 붕괴 당시 주변에는 19m/s의 바람만이 불었습니다. 이 점은 전 세계 공학자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죠. 붕괴의 원인은 바람의 세기가 아닌, 바람으로 인해 발생한 진동이었습니다. 바람으로 타코마 다리는 상판이 뒤틀리고, 위아래로 강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진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 증가했고, 결국 버티지 못한 상판이 붕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 붕괴 당시 타코마 다리의 모습. 상판이 뒤틀리면서 상하로 강하게 요동치다 찢어지듯이 무너져 내립니다 ]


내풍설계를 위해서는 바람의 복합적인 면면을 철저히 분석해야 합니다. 또한 건설물의 형태, 지역별 특성에 맞춰 바람의 영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죠. 현대건설은 1996년 국내 최초로 바람의 영향을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풍동실험실을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풍동(Wind Tunnel)은 건설물에 미치는 바람의 영향을 실험하기 위한 터널 형태의 장치입니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의 공동주택부터 초고층 건축물, 비정형 형상의 오피스건물, 관제탑, 타워 구조물 및 대공간 구조물, 장대교량 등에 대한 다양한 풍동실험을 진행합니다. 


현대건설 풍동실험실은 바람을 일으키는 ‘팬(Fan)’, 바람을 확산시키는 ‘확산부’, 난류*를 등류*로 만드는 ‘정류부’, 풍속을 높이는 ‘측류부’, 풍력과 풍압을 측정하는 ‘측정부’, 축소 모형을 360도 회전시키는 ‘턴테이블’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대형 풍동과 소형 풍동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형 풍동의 경우 총길이 52m로 측정부 길이만 25m에 달합니다. 

*난류: 지면이나 공기와의 마찰 따위로 공기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불규칙하게 흐르는 현상. 

*등류: 공기의 양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흐르는 현상. ‘정상류’로도 불립니다.


풍동 실험실, 확산부, 측류부, 측정부, 정류부, 턴테이플, 팬

[ 현대건설 풍동실험실. 바람을 일으키는 팬, 풍력과 풍압을 측정하는 측정부, 바닥을 360도 회전하는 턴테이블 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 


풍동실험은 모형을 제작해 측정부 초입에 있는 턴테이블에 설치한 후, 팬을 가동시켜 바람의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현대건설의 대형 풍동은 0.3m/s에서 17.5m/s까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바람의 세기가 약하다 싶기도 하지만, 모형을 만들어 진행하는 실험의 특성상 실제 바람의 세기로 환산하면 100m/s 이상의 풍속에 달합니다.


건물의 밀도, 산과 언덕, 스파이어, 러프니스 블랙


실험은 바람을 ‘제대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는 크게 네 가지의 지표면(※아래 표 참조) 형태가 있습니다. 구조물이 적을수록 바람이 세게 불죠. 현대건설 풍동실험실에 들어서면 붉은색 뾰족한 철탑 모양의 스파이어(Spire)와 크고 작은 나무토막 러프니스 블록(Roughness Block)이 먼저 눈에 띕니다. 스파이어는 산과 언덕을, 러프니스 블록은 도시의 밀도를 표현하죠. 실험 대상이 어떠한 환경에 건설되느냐에 따라 배치되는 스파이어, 러프니스 블록의 개수와 크기, 배치가 결정되는데요. 초기 세팅에만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정밀한 작업입니다. 또한 자연에서는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풍동에서는 자연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자 턴테이블을 회전시켜 360도 방향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석합니다.


대도시 중심부에서 고층건축구조물(10층 이상)이 밀집해 있는 지역  수목•높이 3.5m 정도의 주택과 같은 건축구조물이 밀집해 있는 지역 중층건물(4~9층)이 산재해 있는 지역  수목•높이 1.0~1.5m 정도의 장애물이 산재해 있는 지역 저층건축구조물이 산재해 있는 지역  장애물이 거의 없고, 주변 장애물의 평균높이가 1.5m 이하인 지역 해안, 초원, 비행장



장대교량의 미션, 바람의 진동을 이겨라!


교량은 연장이 길수록 바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현대건설은 주경간(양쪽 주탑 사이 거리) 길이가 200m 이상인 장대 특수교량이나, 주경간 길이와 폭의 비율(주경간÷폭)이 30을 넘을 때 풍동실험을 통해 내풍설계를 진행합니다. 와류 진동(Vortex Induced Vibration), 버페팅(Buffeting), 플러터(Flutter) 등 바람으로 인한 여러 가지 형태의 진동과 피로파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량 내풍설계의 기본이죠.

*피로파괴: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외력 탓에 일정 시간이 경과 된 후 재료가 파괴되는 현상. 


쿠웨이트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의 대형 풍동실험 모습

[ 쿠웨이트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의 대형 풍동실험 모습. 현대건설은 약 150분의 1가량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교량 안전성을 다각도로 평가했습니다 ]


와류는 바람이나 물살이 육상․해상 구조물(장애물)을 지나갈 때 발생하는 소용돌이입니다. 소용돌이의 발생 주기가 구조물의 진동 주기와 일치해 생기는 진동을 와류 진동이라고 하죠. 버페팅은 불규칙하게 부는 바람이 구조물을 때릴 때 발생하는 구조물의 진동을 의미합니다. 플러터는 타코마 다리의 붕괴 원인으로, 구조물과 바람의 상호 작용으로 교량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서 작은 하중에도 구조물의 진동이 계속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죠. 현대건설은 상사 법칙*을 토대로 교량 상판의 단면 모형을 만들어 소형 풍동에서 진동 발생 정도를 평가하고, 결과를 설계에 반영합니다. 최종 설계안이 나오면 대형 풍동에서 교량 전체를 약 150분의 1가량 축소한 모형으로 안정성을 다시금 테스트하죠.

*상사 법칙: 자연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실험에 의해 재현되는 현상의 규모가 서로 다를 때, 그 둘 간의 물리량을 서로 연관해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칙(관계식).


울산대교 전경과 상판 3D 단면도

[ 울산대교 전경과 상판 3D 단면도. 세계에서 세 번째이자 국내 최장 단경간 현수교인 울산대교는 현대건설 내풍설계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


교량 내풍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단면의 형상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교량의 난간 높이나 형태, 중앙 분리대의 설치 여부에 따라 진동 발생 수준이 민감하게 변화하기 때문이죠. 현대건설은 상판 단면의 폭과 높이, 모서리의 위치, 부착물의 형태 등 다양한 변수를 세팅하여 풍동실험을 진행한 후 최적의 단면 형상을 선정합니다. 일례로 세계 세 번째이자 국내 최장 단경간 현수교*인 울산대교는 바람이 강하게 부는 해안가에 건설됐습니다. 풍동실험을 통해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풍압과 양압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상판 측면을 비행기 날개의 단면과 비슷한 형태인 유선형으로 디자인했죠. 다경간 현수교*로 건설 중인 칠레 차카오 교량의 경우 최초 설계는 상판의 폭이 25m였습니다. 실험을 통해 최적의 폭이 23.8m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경제성과 내풍 성능을 모두 확보하는 설계를 완성해냈죠. 쿠웨이트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 화양조발대교, 고덕대교(가칭) 등 현대건설이 건설한 국내외 장대교량 프로젝트 일체에는 전문적인 풍동실험을 통한 최적의 내풍설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단경간 현수교: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인 경간이 하나로 연결된 현수교.

*양압력: 물체를 밑에서 위로 올려 미는 압력(중력의 반대 힘).

*다경간 현수교: 3개 이상의 주탑을 갖는 현수교.



안정감 있는 초고층 건축물의 비결?!


통상적으로 ‘높이 200m 이상이거나 50층 이상의 건물’을 초고층 빌딩으로 정의합니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부산국제금융센터(289m), 베트남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262m), 목동 하이페리온(256m)과 카타르 루사일의 떠오르는 랜드마크 ‘루사일 플라자 타워(308m)’는 초고층 건축물에 해당하죠. 초고층 빌딩의 가장 큰 적 역시 다름 아닌 바람입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여도 높이 100m에서는 풍속 35m/s, 600m에서는 52m/s의 강풍이 붑니다. 건물이 높을수록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거죠. 건축 구조 기준(KDS)에 따르면 바닥 면적 대비 높이(형상비)가 3배 이상이거나, 기본 풍속이 34m/s를 초과하는 지역 또는 해안가(해안선 3㎞) 건축물은 필수적으로 풍동실험을 통해 내풍설계를 수행해야 합니다. 건축․주택 건설의 강자인 현대건설은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풍하중*을 측정하는 △풍력실험, 창호나 커튼월 등 외장재에 대한 풍하중을 평가하는 △풍압실험,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로 인한 환경 변화(빌딩풍* 등)를 조사하는 △풍환경평가 등을 진행합니다. 측정된 데이터값은 내풍설계의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풍하중: 바람이 불 때 구조물의 둘레에 받는 힘.

*빌딩풍: 빌딩에 바람이 부딪쳐 갈라지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 소용돌이가 일거나 돌풍이 부는 것.


루사일 플라자 타워

[ 현대건설이 수행 중인 카타르 루사일의 떠오르는 랜드마크 ‘루사일 플라자 타워’. 메인 타워는 지하 5층 지상 70층 규모로 루사일에서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합니다. 웅장한 자태의 루사일 플라자 타워에도 내풍설계가 적용됐습니다 ]


구조물은 고층으로 갈수록 진동 가속도(진동의 크기)가 커집니다. 진동 가속도가 심한 경우 건물에 머무는 사람이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하죠. 우리나라 최초로 건축구조물에 대한 풍동실험을 진행한 현대건설은 건축물의 진동 저감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습니다. 건축물의 진동수와 같은 질량체 혹은 액체를 이용해 진동을 흡수하는 동조질량감쇠기(TMD, Tuned Mass Damper)와 동조액체감쇠기(TLD, Tuned Liquid Damper), 진동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유발시켜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능동질량감쇠기(AMD, Active Mass Damper) 등 진동 에너지를 흡수하는 기술을 내풍설계에 적용해 건축물의 안정성과 사용성을 높이고 있죠.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프로젝트의 풍압실험 모습

[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프로젝트의 풍압실험 모습 ]


건물 사이를 지날 때면 갑자기 부는 강한 바람에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대규모 주택 단지, 초고층 빌딩가에서 자주 발생하는 빌딩풍입니다. 빌딩풍은 심한 경우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깨뜨리거나, 외장재를 파손시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해’로 불리는 이유죠. 빌딩풍은 건물 사이 바람길이 좁아지며 유체의 흐름(기압)이 강해져 생깁니다. 현대건설은 풍환경평가를 통해 빌딩풍의 원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을 때 주변 환경에 미치는 기류의 영향을 철저하게 분석합니다. 보행자 및 거주자의 안전과 쾌적함을 위해 조경 식재 방식을 바꿔 기류를 변화시키거나 방풍 펜스를 설치하고, 건물 상층부의 강한 바람이 지상에 내려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층부에 포디움*을 설치하는 등 사람 중심의 설계를 수행하고 있죠.

*포디움: 1~3층가량 저층부에 조성되는 근린시설.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는 건축물,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길게 펼쳐지는 교량은 무한한 건설의 영역을 보여줍니다. 30년에 가까운 내풍 연구 실적과 바람을 극복하고 우뚝 선 프로젝트들은 현대건설이 국내 최고의 내풍설계 기술력을 보유했음을 나타냅니다. 현대건설 기술연구원 내풍구조* 전문가들 역시 “현대건설의 풍동실험은 오차가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도를 자랑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내죠. 내풍설계는 무엇보다 안전을 책임지는 기술입니다. 내풍설계는 바람을 계산하는 것을 넘어, 바람을 극복하는 현대건설의 최강병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내풍구조: 바람으로 건설물이 무너지거나 외장재가 파손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설계한 구조로, 건설물이 강풍 아래 있어도 그 기능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