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만드는 기술’로 불려온 건설은 사회의 존속과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핵심 역량과 기술은 어떠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요? 현대건설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의 시선을 통해 이를 진단해보는 칼럼을 기획 연재합니다.
■ 고령화 시대가 온다
지난 7월 10일,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9.5%에 해당하는 수치로, 65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눈앞에 다가온 셈입니다. 통계청은 매년 50만 명 이상이 노인 인구로 편입될 것이며, 2035년에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초과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나 혼자 사는’ 노인도 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8명이 자녀의 부양을 받지 않고 단독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독거가구는 20%에 이릅니다. 노인 스스로 생활을 돌보는 시대가 오기 때문에 고령자에게 맞는 일상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 가장 분주해진 분야는 주거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령자들이 거주하며 일상, 여가, 의료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명 ‘시니어 주택’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3 노인복지시설 현황’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시니어 주택은 39곳(8,240가구)에 불과하며, 노인복지시설은 8만 9,643곳이었습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를 경험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노인 주거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민간 주도로 대부분의 실버타운이 형성된 미국은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라는 은퇴자 주거복합단지가 1960년대부터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은 애리조나에 위치한 썬시티(Sun City)로, 1960년에 일반주택 분양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4만 명에 이르는 은퇴 노인이 거주하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여의도의 11배 크기를 자랑하는 이곳은 온화한 사막성 기후를 바탕으로 노인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과 인근 주립대학과 연계한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자랑하는데요. 마을 안에 소방서, 경찰서, 영화관, 쇼핑센터, 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과 24시간 의료서비스가 가능한 노인전문병원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대규모 CCRC가 3,000개 이상 운영되고 있습니다.
[ 미국 애리조나주의 썬시티는 대표적인 실버타운으로 은퇴자들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130개의 레크리에이션 센터와 500개의 골프코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거대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걷거나 운전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다양한 이동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습니다. ]
80세 이상 고령자가 10명 중 1명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최고령 인구를 자랑하는 일본도 시니어 주택이 활성화된 곳입니다. 초기에는 정부 주도로 노인시설이 생겨났지만 2011년 민간에서도 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고령자 주거법’을 전면 개정한 이후 실버시장이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식사, 청소 등 생활지원 서비스가 제공되는 ‘그룹홈’부터, 돌봄이나 간병 서비스 등 특별요양이 지원되는 ‘유료 노인홈’, 도심 내 분양하는 ‘실버맨션’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나오시마의 대표적 관광지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으로 친숙한 베네세그룹도 실버주택과 간병사업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이 분야에 공격적입니다. 2003년에 설립한 ‘베네세스타일케어’는 가격대와 서비스 내용에 따른 7개 실버주택 브랜드가 있을 정도로 세분화된 케어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 분주해진 국내 건설업계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정부는 임대형만으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분양형을 부활시킨다는 방침이며, 실버타운 입주 자격을 확대하는 등 관련 법규 개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안 방안’을 발표하고 소득과 건강에 따른 다양한 시니어 레지던스를 확충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건설업계도 분주해졌습니다. 이미 금융·보험·상조·IT 등 다른 산업들이 시니어주택 선점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 시니어 리빙 전문기업 스라이브(Thrive) 같은 해외 브랜드까지 국내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건설도 신한라이프 산하의 시니어 헬스케어사업 전담 자회사인 ‘신한라이프케어’와 시니어 주거모델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노인복지주택 전반의 영역에서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투자․개발에 참여한 서울 은평과 직접 시공하는 경기도 용인 등 시니어 레지던스 두 곳이 연내 착공을 앞두고 있어 그 행보가 더욱 주목됩니다.
시니어 주택은 고령자가 생활하는 공간인 만큼 설계부터 일반 집과 다릅니다. 현관에는 신발을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간이 의자가 있고, 낙상 사고 방지 차원에서 공간별 단차를 없애고 동작 감지기·비상벨도 설치합니다. 서비스도 고령자 맞춤형입니다.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고 인근 대형 병원과 연계 체계를 갖춰 응급상황에 대비해둔 곳이 많습니다. 생활 편의를 위해 식사 제공은 물론이며 지병에 맞는 맞춤식·특별식도 제공합니다. 병원을 오가는 셔틀버스 또는 발레파킹(대리주차) 서비스를 도입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배려한 곳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시니어 주택은?
시니어 시장이 최근 주목을 받는 데는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의 노년층 유입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불리는 베이비붐세대는 풍부한 사회적 경험과 지식수준을 갖추고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건강과 자신의 여가활동에 과감히 투자하는 성향과 그에 걸맞은 경제력도 갖추고 있죠. 까다로운 니즈와 구매력을 갖춘 이들이 새로운 시니어 주체로 주도권을 잡으며 주거시설도 점차 고급화된 서비스와 대형화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의 시니어 주택은 노인 맞춤형 스마트 주택으로 발전할 전망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영상의학과의 산지브 샘 감비어 교수는 ‘정밀 건강(precision health)’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밀 의료가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라면, 정밀 건강은 건강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해 병을 미연에 예방하는 것입니다. 감비어 교수는 “비행기 제트엔진에 감시센서 수백 개를 달아 엔진상태를 모니터하면서 고장을 예방하듯, 의료에도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주거공간이 노화를 늦추고 건강한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셈입니다.
[ 미래의 주택은 노화를 늦추고 건강한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역할까지 수행할 전망입니다. ]
그의 논문을 보면 집에서 정밀 건강을 어떻게 구현할지 그림이 나옵니다. 홀로 사는 노인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식사가 중요합니다. 아주대 예방의학과 이윤환 교수와 김진희 박사는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영양, 건강, 노화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이를 먹어도 심신이 건강한 노인들은 신선한 고기와 채소, 곡물을 다양하게 먹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 주택은 노인이 어떻게 식사하는지 살펴 부족한 부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면 스마트 변기가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감지합니다. 나이가 들면 끼니를 거르는 비율이 높아 영양 불균형에 빠지기 쉽습니다. 장내 미생물 분석은 영양 상태를 바로 알려줍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박승민 교수는 감비어 교수 연구실에서 스마트 변기를 개발했습니다. 박 교수는 2020년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진단용 스마트 변기를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스마트 변기기 내장 카메라로 대소변 사진을 찍어 1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에는 스마트 변기로 무증상 감염자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논문도 나왔습니다. 스마트 변기가 극미량의 대변을 채취하고 내장 진단키트로 바이러스 유무를 판정하는 방식입니다. 이와 같은 스마트 변기가 시니어 주택에 적용되면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방 역시 건강과 직결됩니다. 스마트 냉장고는 건강관리 앱과 연결돼 어떤 음식을 주로 소비하는지 식사 습관을 알려줍니다. 침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대는 수면 상태와 호흡, 심박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침실 바닥에 센서를 설치하면 낙상이나 졸도 등의 위험을 가족과 의료진에게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낙상은 고령자에게 심각한 위험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8년 미국에서 65세 이상 성인 중 27.5%가 한 해 한 번 이상 낙상을 경험했습니다.
[ 현대건설은 입주민의 건강수명 연장을 목표로, 미래형 주거모델 ‘올라이프케어 하우스(All Life-care House)’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
현대건설은 일찍부터 의학계의 정밀 건강 개념을 집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대건설과 세계적인 과학기기 업체인 미국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국내 대표적인 유전자 분석·검사 서비스 기업 ‘마크로젠’은 3자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건설과 실험기기, 유전자 분석이라는 이질적인 업종의 대표 주자들이 만난 것은 아파트 입주민에게 맞춤형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 기기와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단편적으로 건강 정보를 수집한다면, 유전자 분석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까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시니어를 넘어 전 연령층을 케어하는 진정한 ‘올 라이프 케어 하우스’의 도입을 앞두고 있는 셈입니다.
■ 디지털 트윈 건강주택도 등장 예상
기술의 발전은 의료 공간을 확장시키고 누구나 간편하게 이용토록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건강상태를 항시 체크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으며, 소셜미디어(SNS)에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AI(인공지능)로 분석해 정신건강을 체크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시니어가 너무 집안에서만 머무른다면 AI와 연결된 인간형 로봇이나 로봇개가 산책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초보적인 AI 스피커가 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스마트 시니어 주택에도 반려 로봇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니어주택이 가상세계에 똑같이 구현돼 종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전망입니다. 박승민 난양공대 교수는 지난달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상 곳곳에서 나오는 개인의 인체 정보를 가상세계에 모아 건강관리를 돕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스마트 변기처럼 다양한 센서를 부착한 장치와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활용한 가상 도시 디지털미(DigitalMe)를 만들어 의료서비스에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트윈 공장처럼 똑같이 구현된 가상세계에서 어디가 문제가 생기는지 가상실험으로 확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제 나이만 따지는 ‘장수’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웰에이징(Well-aging)과 멋지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웰엔딩(Well-ending)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삶에 품격을 더하는 기술과 서비스는 더욱 각광받을 전망입니다.
글. 이영완
동아일보와 동아사이언스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19년간 과학기자로 일하다가 2022년 9월 조선미디어그룹의 인터넷 경제매체인 조선비즈로 자리를 옮겨 현재 부국장/사이언스조선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27~28대 회장을 지냈으며, 과학기술부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한국과학기자협회 올해의 GSK 의과학 기자상,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창의보도상,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등을 받았습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수료했으며, 미 하버드대 의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3D 프린터와 줄기세포를 결합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수현 책임매니저, DALL-E 3, 인포그래픽=양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