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한 분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의 경험이라면 더욱 그러하죠. 현대건설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 역시, 맡은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자신을 단련시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건설에서는 회사의 경쟁력이 되어 온 사내 전문가의 인터뷰를 기획 연재합니다.
현대건설 원전해체 전문가 오승준 책임
“‘원전통’ 현대건설, 해체도 자신 있어요!”
글=박현희 / 사진=이슬기,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현대건설이 대형원전 건설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국내외 한국형 대형원전 36기 중 24기의 시공 주관사로 참여하며 국내 건설사 중 최다 실적을 보유한 이력은 단연 압도적이니까요. 그런 현대건설이 원자력발전 전반을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크리에이터(Total Solution Creator)’로 도약합니다. 차세대 핵심 원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을 비롯해 원전사업의 블루오션으로 일컬어지는 원전해체까지 지경을 넓히고 있는 것이죠. 이로써 현대건설은 원자력발전 전 영역과 전 생애를 책임지게 됩니다.
[ 글로벌 원전사업 전망 및 현대건설 원전사업 현황. 에너지경제연구원 WNA(World Nuclear Association) 자료를 참고로 시장 규모를 예측했습니다. ]
그중 원전해체 분야에 대한 현대건설의 자신감은 특히 남다릅니다. 대형원전 건설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만큼 원전해체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죠. 현대건설 원자력사업단 오승준 책임매니저는 2006년 입사부터 지금까지 ‘원전’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원자력발전 전문가입니다. 신고리원전 1~4호기 현장과 UAE 원전 건설 현장에 근무했으며, 한빛 3,4호기 증기발생기 교체 공사에서 원전해체와 유사한 공정을 경험했죠. 원전해체 부지복원 상용화 기술 확보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인디안포인트 원전해체 프로젝트의 사업관리와 SMR-160 모델 초도호기(First of a kind, FOAK) 배치*를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 한국과 미국을 바쁘게 오가고 있는 오승준 책임을 만나보았습니다.
*SMR-160은 현대건설이 미국 원자력기업 홀텍 인터내셔널과 함께 상세설계 중인 표준모델(스탠다드 디자인)입니다. 160MW급 경수로형 소형모듈원자로로 사막, 극지 등 지역 및 환경적 제한 없이 배치할 수 있죠. SMR-160은 홀텍 인터내셔널이 소유한 ‘오이스터 크릭’ 원전해체 부지에 최초로 배치되는데요. 현대건설이 참여해 탄생한 상세설계 결과물들은 미국 내 최초 SMR 건설허가 신청을 위한 제반 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향후 세계 각국에 배치될 SMR의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앉은 오승준 책임. 2006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원전 현장을 오가며 실력을 쌓아 온 그는 원전해체에도 남다른 지식을 가진 현대건설의 원자력발전 전문가입니다. ]
영구정지된 원전 203기 중 해체 완료는 21기뿐
원자력발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원전해체가 신사업으로 대두된 데는 거대한 시장 규모에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원전을 가동한 시기는 1954년 6월, 그 후 각국에 647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됐습니다. 대부분 가동 수명이 30년으로 설계되었죠. 국제원자력기구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22년 11월 운영 중인 원전 423기 중 65% 이상이 설계 수명에 다다랐습니다. 영구적으로 정지된 원전은 203기로, 이중 21기만이 해체가 완료된 상황입니다. IAEA는 2050년까지 총 588기의 원전이 영구정지 대상이라고 합니다. 시장 규모로 보면 무려 440조원에 달하죠. 그러나 원전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고작 4개국뿐입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원전을 해체해 본 나라가 적다는 건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에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기업이나 나라가 아직 없다는 뜻이니까요. 현대건설이 원자력발전의 신사업으로 각광받는 원전해체 시장을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기준으로 정리한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현황. ]
사용후 핵연료 냉각 후 반출, 붕괴열 냉각이 포인트
원전해체는 수명이 다 된 원전을 안전하게 처리하고, 그 부지를 발전소 건설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일련의 과정 일체를 말합니다. 크게 ▶영구정지 ▶사용후 핵연료 반출 ▶제염‧철거 ▶부지복원 단계를 거치는데, 최소 15년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공정관리와 기술력을 요구합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영구정지 판정을 받으면 사용후 핵연료*를 식히고 처리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원두 찌꺼기가 남는 것처럼, 원전을 가동하면 필연적으로 사용후 핵연료가 발생하죠. 사용후 핵연료는 사용전 핵연료보다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배출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원전 내 수조 형태의 저장소에서 저장‧관리합니다. 이후 외부 저장시설을 거쳐 지하 500m 아래에서 영구 격리되죠.
*사용후 핵연료: 원자력발전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된 연료(우라늄, 플루토늄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방사선의 방출 세기가 강한 방사성 폐기물.
[원전 상식] 방사선·방사능·방사성 어떻게 다른가요? ·방사선: 불안정한 상태의 원소가 안정적인 상태로 바뀌면서 방출하는 입자, 빛, 파장과 같은 에너지 흐름. ·방사능: 방사선의 세기, 즉 방사선을 내뿜는 능력을 말합니다. ·방사성: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는 물질의 성질.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 합니다. |
사용후 핵연료의 온도 및 방사선 수치가 반출이 가능한 수준으로 낮아지려면 최대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 기간 동안 안전‧공정관리 및 반출 계획을 세우고, 비용을 산정하는 등 원전해체에 필요한 각종 준비를 마치게 되죠. 충분히 식었다면 사용후 핵연료를 외부 저장시설로 보낼 차례입니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방식에는 원자로를 물에 담가 붕괴열*을 식히는 습식저장과 사용후 핵연료를 콘크리트나 금속 용기에 담아 공기로 열을 낮추는 건식저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적이고 유지‧관리가 수월한 건식저장 방식을 택하고 있죠. 건식저장의 핵심은 바로 캐스크(Cask)입니다. 캐스크는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 각종 진동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특수 차폐 용기로, 원전해체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붕괴열: 방사성 물질들이 안정된 원소로 변할 때까지 계속 붕괴하면서 열을 뿜는데, 이를 붕괴열이라고 합니다. 원전해체에서 중요한 것은 붕괴열을 식히는 것입니다. 영구정지 직후에도 운전 중 출력의 6~7%에 달하는 열을 방출한다고 알려졌죠. 이 붕괴열을 순식간에 낮추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높은 열을 낮추기 위해서는 물 또는 공기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식혀야 합니다.
[ 미국 원자력기업 홀텍 인터내셔널의 사용후 핵연료 외부 저장시설. 사진 중앙에서 우측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원통들이 캐스크입니다. ]
“캐스크는 고난도 설계로 이뤄진 특수 차폐‧저장용기예요. 현대건설과 협업 중인 미국 원자력기업 홀텍 인터내셔널(Holtec International, 이하 홀텍)은 원전해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회사예요. 전 세계 건식저장 시설의 절반이 ‘홀텍표 캐스크’를 사용할 정도죠. 현대건설은 현재 홀텍 소유의 미국 원전해체 현장에서 시공은 물론 캐스크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어요. 향후 국내외 원전해체 수주에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전해체에 로보틱스 기술 적용… 국내 최초 방사성 오염토양 복원 분야 녹색인증도 받아
사용후 핵연료를 모두 반출했다면 원자로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할 차례입니다. 그래야 구조물을 철거하고 안전하게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죠. 여기서 핵심은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입니다. 제염은 특수 액체로 방사성 물질을 닦아내는 방식과 표면을 갈아내는 세정‧연마 방식이 널리 쓰입니다. 구조물 철거‧폐기물 처리 단계에 사람이 투입되기 때문에 두 단계에 거쳐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죠.
“제염을 마쳐야만 현장에 인력이 들어갈 수 있어요. 최근에는 이 단계에서 로보틱스 기술이 적극 도입되고 있는 추세인데요. 현대건설 역시 인공지능(AI) 로봇개 ‘스팟’을 활용하여 방사선량을 사전에 모니터링하는 등 원전해체 현장에 로보틱스 기술을 적용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봐요.”
[ 원자로 절단에도 로보틱스 자동화 기술이 적용됩니다. ]
원전해체의 마지막 단계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던 땅을 자연 그대로 되돌리는 부지복원입니다. 현대건설은 2019~2021년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발주한 <해체원전 부지오염 및 규제해제 안전성 평가> 과제를 통해 ▲해체원전 지하수 감시 및 오염평가 기술 ▲방사성 오염토양/지하수 복원 기술 ▲부지 규제해제/안전성 평가 기술 ▲부지 재이용 평가 기술 등 부지복원에 관한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현대건설이 추가적으로 개발한 원전해체 부지복원 기술(입도분류 및 양이온 교환 세척 공정을 이용한 방사성 세슘 오염토양 폐기물 감량 기술)이 환경부 녹색인증을 받기도 했죠. 방사성 오염토양 복원 분야에서 녹색인증을 받은 것은 현대건설이 최초이자 유일합니다.
“원전 전문가로서 방사성 오염토양 복원 기술 녹색인증 과정에 참여했어요. 한국수력원자력 입회 아래 파일럿 플랜트*를 지어 기술 성능 평가를 진행했는데, 시간당 900kg 이상의 방사성 오염토양에서 90% 수준의 세슘이 제거되는 것을 확인했죠.”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 파일럿 테스트(기술 상용화 전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확인해보는 것)를 위해 지은 플랜트.
[ 부지복원은 땅을 원전 건설 전 자연 그대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오염토양과 지하수를 복원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원전해체가 마무리됩니다. ]
현대건설은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자, 원천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승준 책임은 “대형원전 시공 실적 없이 원전해체를 수행하는 것은 지도 없이 길을 찾는 것과 같다”면서 현대건설의 경쟁력을 강조했습니다.
“현대건설의 장점은 우수한 인재와 기술력이에요. 원자력발전 전문 인력과 함께 도면, 시공 절차서, 설계 변경서, 각종 검사 서류와 기술 리포트 등 대형원전 건설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죠. 구조물을 해체하는 일은 시공 역순으로 진행돼요. 타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노하우를 갖춘 만큼 원전해체 분야에서 초격차가 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미국서 국내 기업 최초 원전해체 PM 프로젝트 수행 중
현대건설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발주한 고리1호기 ‘해체 부지 오염 및 규제 해제 안전성 평가’ 용역을 시작으로 원전해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난해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원전해체 사업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죠. 현대건설은 지난 3월 홀텍과 인디안포인트(IPEC‧Indian Point Energy Center) 원전해체 사업과 관련하여 PM(Project Management) 용역을 포함한 협력계약(Teaming Agreement)을 체결했습니다.
IPEC는 미국 뉴욕 소재의 원자력발전소로 총 3개호기(2317MW)로 구성돼 있습니다. 2021년 4월 3호기가 마지막으로 영구정지된 후 그해 5월 홀텍으로 소유권이 최종 이전됐죠. 양사는 협력계약을 통해 ▶홀텍 소유 미국 원전해체 사업 직접 참여 ▶글로벌 원자력 해체 시장 공동 진출 ▶마케팅 및 입찰 공동 추진 등 사업 전반에 합의했습니다.
[ 현대건설이 지난해 3월 뉴욕 주에 위치한 홀텍社 소유의 인디안포인트 원전해체 사업에 PM 계약을 포함한 원전해체 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사진은 현대건설 윤영준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홀텍 크리스 싱 최고경영자(CEO & President). ]
지난해 9월 현대건설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인디안포인트 원전해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미국행 항공기에 올랐습니다. 모두 원자력 분야에만 10년 이상 몸담은 베테랑으로, IPEC 현장에서 ▶원자로 등 주기기 절단 및 해체 ▶금속 폐기물 처리 및 부지복원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 설비에 대한 프로젝트 관리 등을 수행합니다. 오승준 책임은 이들의 한국 컨트롤타워로서 출국 전까지 원전해체 단계별 교육은 물론, 해체 시설 견학을 주선하며 파견 직원들이 현장 투입 즉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현대건설은 원전해체와 관련해 많은 준비를 해왔어요. ‘원전해체 선도 기업’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 IPEC 프로젝트 참여가 있죠. 저는 파견 직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본사 차원에서의 사업관리와 IPEC 현장에서 얻은 정보와 기술을 데이터화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회사의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이라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 인디안포인트 원전해체 프로젝트에서 근무 중인 현대건설의 원전 전문가들. ]
현대건설은 해체 공정 및 공사 계획, 대형기기 부피감용*, 화학 제염, 원자로 압력용기 및 내장품 절단,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캐스크 저장‧운송) 등 인디안포인트 원전해체 사업 전반에 참여합니다. 국내에서 원전해체 PM 용역을 직접 수행하는 건설사가 현대건설이 유일한 만큼 미국 원전해체 현장 직원들 역시 남다른 열정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부피감용: 폐기물의 용적을 파쇄, 탈수, 건조, 소각 등으로 감소시키는 것.
“부임 초기에는 시차, 문화차이 등으로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실적으로 우리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줘야 하니 부담이 컸죠. 여전히 어깨는 무겁겠지만, 적응을 해서인지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K-원전의 기술력을 열심히 뽐내는 중이죠(웃음).”
두 딸이 뛰놀아도 안전하도록… 아빠의 마음으로 원전해체 총력
오승준 책임은 원자력발전 분야에서 17년가량 몸담았습니다. 여러 원전 현장을 거쳤고,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향후 우리 회사가 수주해낼 소형모듈원전, 원전해체 현장에서 근무하고 싶은 바람도 크죠.
“우리 회사가 고리1호기 원전해체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면 현장 착수 시점부터 투입되고 싶어요. 신고리 1~4호기 현장에서 근무해서인지 고리1호기에 애정이 많기도 하고, 우리 회사가 개발한 기술들을 현장에 적용해 보고 싶은 마음도 크거든요. 퇴임하는 그날까지 대형원전‧소형모듈원전 건설부터 원전해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등 원자력발전 전 영역을 경험해 보는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회사 밖을 나서면 사랑스런 아내의 남편이자 열 살, 일곱 살인 두 딸의 아빠가 됩니다. 오승준 책임은 “가족들에게 원자력발전소의 A to Z를 설명한 덕분에 모두가 준전문가가 됐다”며 미소 지었습니다.
“가족들도 어느덧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주변에 말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원자력은 정말 안전한 공학이에요.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한 에너지 설비이고요. 훗날 우리 자녀들이 원전해체 부지에서 마음껏 뛰놀아도 안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