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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 공포 영화 속 `오싹`한 비밀

2020.08.26 2min 36sec

과학산책 장마가 지나가고 어김없이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등골 서늘한 공포물이 생각납니다. 털이 쭈뼛 서는 오싹한 공포에 얽힌 과학 이야기.


여름이면 극장가와 방송가에서 앞다투어 ‘납량 특집’을 방영했습니다. 다들 한 번쯤 봤을 법한 <전설의 고향>은 특별한 피서거리가 없던 시절,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죠. 최근에는 공포물을 여름 한정으로 제한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공포물=여름’이 제격이라 생각합니다. 공포물을 보다 불현듯 느끼는 오싹함이 정말 더위를 식힐 수 있을까요?


공포 영화의 법칙: 시각 vs 청각
공포 영화는 무서움(Horror)을 느끼라고 만든 것이라 당연히 보는 내내 겁이 나고 두렵습니다. 귀신이나 좀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죠. 최대한 무섭게 잘 만든 공포 영화에는 ‘공식’이 있습니다. 공포와 불안감 조성을 위해 시각적 효과와 효과음, 배경음악 등을 적절하게 조합해 관객의 무서움을 자극하는 거죠.
영화사를 통틀어 공포·스릴러의 한 획을 그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가 이 공식을 잘 버무려 넣은 희대의 공포물입니다. 여자 주인공이 샤워하는 도중 커튼 뒤로 비추는 칼을 든 괴한의 그림자는 많은 이가 꼽은 최고의 공포 명장면이죠. 이 장면이 빛을 발휘하기 위해 앞서 세차게 내리는 비와 도로변의 낡은 모텔, 친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주인은 관객의 두려움을 극대화한 기폭 장치입니다. 이와 더불어 가장 큰 공포와 긴장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음향 효과. 직접적으로 살해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바이올린 줄의 날카로운 배경음과 칼에 찔리는 둔탁한 소리는 보는 이의 공포심을 극대화한 일등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듯 소리는 두려움을 만들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무섭게 장면을 포장합니다.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려도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죠. 공포 영화에서 단골로 들을 수 있는 삐걱거리는 효과음이 꾸준하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듣기 거북한 삐걱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관객은 극한의 무서움을 느낍니다. 따라서 음향 기술이 제대로 구현된 곳에서 공포 영상을 본다면 두려움을 한껏 자극해 공포감을 극한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사람에 따라 느끼는 무서움의 차이가 다르지만 계속해서 공포물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위적 공포가 주는 오싹함을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포를 느낀 뒤 일시적으로 아드레날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짜릿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뇌의 편도체가 관여하는데, 변연계에서 공포를 감지하면 시상하부를 통해 부신피질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라는 신호가 전달됩니다. 또한 교감신경계를 흥분시켜 싸움-도주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는 즉각적으로 위험에 대처할 준비로 심장박동수와 호흡이 빨라지고 근육으로 피가 쏠려 피부 혈관을 수축시키죠. 이때 털이 서고 순간적으로 서늘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포를 느꼈을 때 흔히 말하는 표현들은 교감신경계 흥분과 관련 깊습니다. ‘놀라서 눈이 커졌다’는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서 눈이 튀어나오고 동공이 확대된 겁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한 것은 교감신경계에 의해 ‘심장이 요동’치는 거고, 입모근이 수축하면 ‘소름 돋고 털이 곤두섭'니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 역시 공포에 질려 피부 주변의 혈관이 수축해 혈액 양이 줄어들면서 핏기가 사라지는 교감신경계의 반응입니다. 순간 오싹함을 느끼는 것은 혈관이 수축하면서 식은땀이 흘러 온도가 떨어짐을 체감하는 거죠. 공포 영화를 보면 서늘하고 떨리는 것은 그런 듯한 느낌이 아닌 몸의 진짜 반응인 겁니다.
공포 영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전두엽을 통해 영화 속 내용이 가짜임을 인식하고 있어 공포 자체를 즐기죠. 재미있는 사실은 정말로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과 즐기는 타입 모두 공포로 인해 신체가 반응하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만성 스트레스는 우울증과 심장마비 등 다양한 질환의 위험률을 높이지만, 공포물 같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는 오히려 면역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공포물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합니다. 사회학자 마지 커 박사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놀이기구를 타거나 호러물을 보는 등의 강한 자극이 일시적으로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포의 자극이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자극해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공포 영화를 보는 것은 운동 효과도 있습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면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공포물만 봐도 30분 정도 걷는 만큼의 칼로리가 소모된다고 하네요.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공포 영화를 보며 칼로리 소모도 하고 스트레스도 푸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싹한 고전영화 best 3 (스포주의!!)


  싸이코(1960)
1960년대에 만들어진 흑백 영화로, 영화사 최고의 호러물이자 미국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지금 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정교하고 무서운 공포 영화의 기본이 잘 들어간 영상이죠. 당시에는 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장면과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틀을 깬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당장 재생 버튼을 누를 것을 추천합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1974)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더 유명한 영화입니다. 계속해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공포 영화의 전설이죠. 전통적인 슬래셔 무비(살인마가 무기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영화)로 살인마가 전기톱으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관객에게 잠재적 영향을 줄 수 있어 개봉 때부터 지금까지 뜨거운 논란이 있죠. 오리지널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플레이 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샤이닝(1980)
스티븐 킹의 소설을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며 피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 인용돼 더 많은 이에게 알려졌습니다. 레전드로 꼽히는  “Here’s Johnny!” 장면은 60개의 문을 3일 동안 찍었습니다. 광기 어린 잭 니컬슨의 연기와 싸늘한 영상미, 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음향효과까지, 오싹함을 느끼기에 제격입니다.


글=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