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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술] 우주 로켓부터 태아의 혈관까지 진출한 3D 프린터

2021.01.14 2min 46sec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3D 프린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D 프린터로 자동차의 세밀한 부품과 인공관절을 만든다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계 시장 26조원의 규모로 급성장하며 다양한 산업에서 각광받고 있는 3D 프린터에 관해 알아봅시다.


미국 렐러티비티 스페이스가 3D 프린터로 만들고 있는 우주로켓. 2021년 발사할 예정입니다

[ 미국 렐러티비티 스페이스가 3D 프린터로 만들고 있는 우주로켓. 2021년 발사할 예정입니다. ]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획기적인 3D 프린터의 발전 사례로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채드 머킨 교수를 소개했습니다. 머킨 교수의 3D 프린터가 기존 프린터와 다른 점은 엄청난 제작 속도인데요. 이 프린터는 가로세로 30㎝, 높이 1.2m의 대형 구조물을 단 3시간에 완성했습니다. 초창기 3D 프린터와 비교하면 1000배에 가까운 속도입니다.
3D 프린터가 고속화·대형화되면서 상용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재료도 플라스틱 중심에서 금속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살아 있는 세포를 찍어내는 프린터도 등장했습니다. 3D 프린터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산업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월러스 어소시에이츠는 2017년 73억4000만 달러 규모의 세계 3D 프린팅 시장이 연평균 27.5%로 고속 성장해 2023년에는 273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사람 크기 구조물도 몇 시간 만에 뚝딱
3D 프린팅은 1980년대 중반에 등장했습니다. 초기 업체인 3D 시스템즈는 합성수지(플라스틱)를 층층이 쌓고 자외선을 쏘아 입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3D 프린터를 개발했는데요. 어린 시절 찰흙을 둥글게 말아 쌓으면서 그릇을 만들던 방식과 비슷합니다.
수십 년 동안 큰 변화가 없던 3D 프린터가 최근 급변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속화입니다. 머킨 교수는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시간당 43㎝ 높이를 인쇄할 수 있는 초고속 3D 프린터를 발표했습니다. 합성수지 용액이 담긴 투명 용기에 입체 도면대로 빛을 쏘아 한 번에 굳히면서 위로 뽑아내는 방식입니다. 머킨 교수는 이 프린터로 몇 시간이면 사람 크기의 물체도 제작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메인대가 3D 프린터로 만든 경비정.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길이 8m의 선박을 72시간 만에 인쇄했습니다.

[ 미국 메인대가 3D 프린터로 만든 경비정.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길이 8m의 선박을 72시간 만에 인쇄했습니다. ]


노즐 공중에 매달아 크기 한계 극복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액체 플라스틱을 쌓아 소형 시제품이나 기념품을 찍어내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건물이나 교량, 선박에서 우주로켓까지 프린팅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10월 두바이에 2층짜리 정부 건물이 문을 열었습니다. 다른 건물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기술 발전의 이정표로 기록했습니다. 바로 3D 프린터로 지은 세계 최대 건물로 연면적만 640㎡이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러시아 3D 프링팅 업체인 아피스코가 세웠는데요. 원리는 시제품을 만드는 소형 3D 프린터와 같이 재활용 건축자재와 시멘트, 석고 등을 노즐로 층층이 뿌리고 굳히면서 벽을 쌓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차이는 크기의 제한을 극복한 것입니다.


아피스코사가 3D 프린터로 지은 세계 최대 면적의 건물. 두바이 정부의 2층짜리 사무실 건물로 높이 9.5m, 면적 640㎡입니다

[ 아피스코사가 3D 프린터로 지은 세계 최대 면적의 건물. 두바이 정부의 2층짜리 사무실 건물로 높이 9.5m, 면적 640㎡입니다. ]


3D 프린터는 보통 소형 냉장고 크기로 프린터보다 작은 물건을 찍어냅니다. 그러나 아피스코는 크레인에 노즐을 매달아 상하좌우로 옮기는 방식으로 프린터 크기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이 3D 프린터는 3.3m 높이까지 벽을 쌓을 수 있고, 하루 최대 100㎡ 면적을 제작할 수 있어 건축비와 인력을 크게 절감할 수 있죠. 두바이는 이런 장점을 내세워 2030년까지 신축 건물의 25%를 3D 프린팅 방식으로 세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건물, 교량에서 선박, 우주로켓으로 확대
3D 프린터가 대형화되면서 활용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칭화대의 수웨이구오 교수팀은 지난해 1월 상하이에 3D 프린터로 만든 26m 길이의 콘크리트 인도교를 선보였습니다. 1400여 년 전에 세워진 옛 교량을 본뜬 다리였는데, 기존 교량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의 3분의 2가 투입됐습니다. 우주항공 분야도 대형 3D 프린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보잉 · 롤스로이스 · 프랫앤드휘트니 등 우주항공업체들은 3D 프린터로 제트 엔진과 날개 등 다양한 항공기 부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렐러티비티 스페이스는 아예 우주로켓 전체를 3D 프린터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로켓은 1.25t의 화물을 싣고 2021년 발사될 계획입니다.


중국 칭화대 연구진이 3D 프린터로 찍어낸 26m 길이의 콘크리트 다리.

[ 중국 칭화대 연구진이 3D 프린터로 찍어낸 26m 길이의 콘크리트 다리. ]


우주항공이나 조선업체들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복잡한 부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금속 분말을 쌓으면서 레이저를 쏘아 굳히는 방식으로 원하는 입체를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결함입니다. 대형 금속 부품은 작은 결함에도 제품 특성이 크게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난해 호주 멜버른 왕립공대 과학자들은 3D 프린터로 기존과 같은 강도를 가진 티타늄 부품 인쇄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연구진은 티타늄에 구리를 첨가해 금속 분말이 굳는 속도를 높였는데요. 그러자 금속 입자가 더 작아지고 모든 방향으로 균일한 형태를 갖춰 전체적인 구조 강도를 높일 수 있게 됐습니다.


4D 프린터와 바이오 프린터로 진화
3D 프린터를 넘어 모양이 변하는 이른바 ‘4D 프린팅’ 기술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8년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소형 잠수함을 만들었습니다. 잠수함에는 좌우로 노가 달려 있는데 온도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합성수지로 인쇄했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물에서 스스로 노를 저어 이동이 가능합니다.
4D 프린터 기술은 자동차와 의료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2018년 미국 UC샌디에이고와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만든 격자 구조 안에 자기장에 반응해 굳어지는 액체를 채워 넣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방식으로 더 안전한 자동차 운전석을 만들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충돌 사고가 나면 순식간에 단단해져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료 분야에서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스텐트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말린 상태지만 몸 안의 체온에 의해 펴지는 방식입니요. 스위스와 이탈리아 연구진은 지난해 4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초소형 스텐트를 개발했습니다. 워낙 크기가 작아 태아의 요도관 협착을 해결하는 데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스라엘 연구진이 3D(입체)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미니 심장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AFP 연합뉴스

[ 이스라엘 연구진이 3D(입체)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미니 심장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AFP 연합뉴스 ]


살아 있는 세포를 이용하는 바이오 프린터도 등장했습니다. 세포가 들어 있는 바이오 잉크를 쌓아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방식인데, 이미 국내외 업체들이 화상을 입은 환자의 피부에 이식할 조직이나 각막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프린터의 최종 목표는 심장이나 신장과 같은 장기입니다. 지난해 4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사람 세포로 이뤄진 미니 심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은 줄기세포를 굳으면 묵처럼 되는 겔과 섞어 3D 프린터의 바이오 잉크로, 높이 20㎜, 지름 14㎜의 심장을 인쇄했습니다. 그러나 실물 크기의 장기를 3D 프린터로 찍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장기는 수십 가지 세포로 이뤄져 있어 잉크를 만드는 일부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3D 프린터 기술로 인공 장기를 찍어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착한 기술이 조만간 구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이영완 <조선일보> 과학전문기자 / 사진=각 사 제공